[KR] 서로에게 최선을 다할 때, 관계는 가장 빨리 무너진다
자기결정 이론, 라캉, 그리고 감정 해석권으로 다시 읽는 노력의 구조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관계에서 가장 위험한 문장을
물은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헤어지자.”
“실망했어.”
“이제 못 믿겠어.”
같은 말을 떠올립니다.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가장 위험한 말은
“이제 내가 노력할게”
였습니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라
수행 과제가 됩니다.
더 다정해져야 하고
더 이해해야 하고
더 기다려야 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두 사람은
서로를 더 사랑하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더 증명하기 시작합니다.
직관에 반하는 명제입니다. 모든 자기계발 담론과 관계 상담의 표준 처방은 정확히 그 반대를 말합니다. 더 노력하라, 더 이해하라, 더 다정해져라. 사랑은 의지로 지켜야 하고, 좋은 관계는 결국 서로의 노력 위에 세워진다는 말은 너무 익숙해서 거의 도덕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오래 사람을 들여다보면, 노력은 관계를 살리는 동력이라기보다 관계의 상태를 알려주는 지표에 가깝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노력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노력이 어디에서 출발하고 무엇을 향해 가는지가 문제입니다. 어떤 노력은 관계를 부드럽게 하고, 어떤 노력은 관계를 더 빠르게 닳게 만듭니다.
결정적인 차이는 노력의 양이 아닙니다.
노력의 출처입니다.
자율에서 나오는가, 불안에서 나오는가. 사랑의 표현인가, 버려지지 않기 위한 수행인가. 상대를 향한 움직임인가, 자기 가치의 붕괴를 막기 위한 방어인가.
사람을 가장 깊이 소진시키는 것은 사랑의 부족만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너무 의식된 노력, 너무 계산된 선의, 너무 오래 긴장한 다정함이 관계를 더 빨리 닳게 만들었습니다.
자기결정 이론, 기대의 심리학, 부정성 비대칭, 라캉의 욕망 이론, 그리고 제가 작업해 온 감정 해석권(affective sovereignty) 연구는 서로 다른 언어로 이 구조를 가리킵니다.
노력하지 않는 관계가 아니라, 열심히 노력하는 관계가 왜 먼저 무너지는지. 이 글은 그 구조에 관한 것입니다.
노력은 결핍의 신호다
Deci와 Ryan의 자기결정 이론은 인간 행동의 동기를 크게 두 축으로 나눕니다. 하나는 자율적 동기입니다. 행동이 자기 가치, 관심, 의미와 연결되어 있을 때 사람은 비교적 오래 움직일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통제된 동기입니다. 외적 보상, 처벌의 회피, 죄책감, 수치심, 자존감 보존을 위해 움직일 때 행동은 겉으로는 같아 보여도 내부 비용이 커집니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다정함이라도, 그 다정함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경우와 “이 정도는 해야 버려지지 않겠지”라는 긴장 속에서 수행되는 경우는 전혀 다릅니다. 같은 사과라도, 자기 이해에서 나온 사과와 관계를 잃지 않기 위한 급한 진정 행위는 다른 일을 합니다. 같은 기다림이라도, 상대의 리듬을 존중하는 기다림과 불안 때문에 아무 말도 못 하고 버티는 기다림은 몸 안에서 다른 흔적을 남깁니다.
관계에서 “노력하겠다”는 선언이 위험한 것은, 그 선언이 자주 동기의 무게중심을 자율에서 통제로 이동시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선언이 곧바로 통제 동기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진심으로 변화하고 싶어서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관계 위기 속에서 나온 “노력할게”는 종종 사랑의 언어라기보다 수행 계약에 가깝습니다.
그 순간부터 다정함은 흐름이 아니라 의무가 됩니다.
이해는 발견이 아니라 과제가 됩니다.
기다림은 여유가 아니라 시험이 됩니다.
외부에서는 헌신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내부 회로에서 작동하는 것은 사랑보다 위협 대응에 가깝습니다. 상대를 더 사랑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감각을 진정시키기 위해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계 전체의 공기를 바꿉니다.
Knee와 동료들의 관계 수반 자존감 연구는 이 지점을 더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관계 수반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연애나 결혼 관계의 사건을 단순한 상호작용으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작은 침묵, 늦은 답장, 줄어든 애정 표현, 무심한 표정이 곧 자기 가치 전체를 흔드는 신호가 됩니다. 관계가 흔들리면 “우리 사이에 문제가 있나”가 아니라 “내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가”로 내려갑니다.
이때 노력은 사랑의 확장이라기보다 자기 가치의 붕괴를 막기 위한 방어 작업이 됩니다.
더 잘해야 한다.
더 참아야 한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 문장은 아름답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이미 두려움이 들어 있습니다. 사랑은 상대에게 가는 길이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자기 존재를 보존하기 위한 응급처치가 됩니다. 그래서 노력하는 사람은 착해 보이지만, 늘 편안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계속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관계를 잃지 않으려 합니다.
이 차이를 보지 못하면, 우리는 가장 지친 사람에게 더 노력하라고 말하게 됩니다.
기대는 노력의 그림자다
노력은 혼자 남지 않습니다. 노력은 거의 언제나 기대를 데리고 옵니다. 내가 이렇게 했으니, 상대도 어느 정도는 알아주겠지. 내가 참고 있으니, 언젠가는 달라지겠지. 내가 더 부드러워졌으니, 상대도 조금은 조심해주겠지.
이 기대는 처음에는 매우 조용합니다. 말로 꺼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도 기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관계 안에서 반복된 노력은 거의 언제나 보이지 않는 장부를 만듭니다. 노력은 기록됩니다. 양보도 기록됩니다. 참은 말도 기록됩니다. 그리고 그 장부는 결제되지 않을 때만 모습을 드러냅니다.
McNulty와 Karney의 결혼 초기 종단 연구는 이 지점에서 중요합니다. 관계 만족도의 하락은 단순히 파트너의 실제 행동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기대와 행동 사이의 간격이 중요합니다. 같은 행동도 기대가 높아질수록 작아집니다. 예전에는 고마웠던 일이 이제는 당연해지고, 예전에는 충분했던 애정 표현이 어느 순간 부족해집니다.
노력하는 관계가 위험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노력은 관계 안의 기준선을 올립니다.
처음에는 특별했던 배려가 표준이 됩니다.
표준이 된 배려는 더 이상 사랑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빠졌을 때만 결핍으로 감지됩니다.
Baumeister와 동료들의 Bad Is Stronger Than Good은 인간 심리에서 부정적 사건이 긍정적 사건보다 더 강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광범위하게 보여줍니다. 학습, 기억, 인상 형성, 친밀 관계에서 나쁜 것은 좋은 것보다 오래 남고 깊이 박힙니다. 부부 상호작용 연구에서는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긍정 대 부정의 비율이 약 5:1 이상 필요하다는 추정도 보고되었습니다.
이것을 관계의 일상으로 옮기면 더 잔인해집니다.
열 번 잘해도 한 번의 어긋남이 남습니다.
오래 참아도 한 번의 무심함이 기록됩니다.
계속 애써도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한 순간이 더 크게 남습니다.
노력이 위험한 진짜 이유는 그것이 무의식적으로 숨은 청구서를 작성하기 때문입니다. 청구서는 결제되지 않을 때만 인식됩니다. 결제되면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고, 결제되지 않으면 더 큰 무게로 기록됩니다.
그래서 노력하는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집니다. 사실 갑자기가 아닙니다. 오래 적어온 장부가 한 번에 열린 것뿐입니다.
“내가 얼마나 했는데.”
이 문장이 나오면, 관계는 이미 사랑의 언어에서 회계의 언어로 넘어간 것입니다.
증명은 사랑의 대체물이 된다
정신분석은 이 구조를 더 차갑게 진술합니다. 라캉은 욕망이 결핍에서 태어나며, 우리가 욕망하는 것은 늘 타자의 욕망이라고 보았습니다. 이 명제를 관계 안으로 옮기면, 노력하는 두 사람이 원하는 것은 때로 상대의 사랑 그 자체가 아닙니다. 자기가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차이는 중요합니다.
사랑은 경험될 수 있지만, 증거는 수집됩니다.
사랑은 머무를 수 있지만, 증거는 계속 갱신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모호함을 견딜 수 있지만, 증거는 모호함을 싫어합니다.
증거는 본질적으로 부족합니다. 오늘의 답장은 어제의 불안을 완전히 지우지 못합니다. 오늘의 포옹은 지난주 침묵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오늘의 사과는 오래 쌓인 감각을 끝까지 복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증거가 도착해도 곧 다시 의심이 시작됩니다.
정말 미안한 걸까.
정말 사랑하는 걸까.
이번엔 진짜 달라질까.
내가 또 혼자 의미를 붙이는 건 아닐까.
이 회로는 친밀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친밀감이 측정되어야 한다는 전제 자체를 강화합니다. 측정되는 사랑은 측정되지 않을 때마다 의심됩니다.
Murray와 동료들의 The Mismeasure of Love는 이 점을 경험적으로 보여줍니다. 자기 의심이 강한 사람은 파트너의 긍정적 신호조차 안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가 도착해도, 그 증거의 진정성을 다시 의심하는 메타 회로가 작동합니다. 그러면 상대의 애정 표현은 잠시 안심을 줄 수는 있어도, 구조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노력은 이 회로를 진정시키지 못합니다. 오히려 반복된 노력은 증거 요구를 더 정교하게 만듭니다. 더 많은 설명, 더 빠른 반응, 더 정확한 표현, 더 분명한 애정 표시가 필요해집니다. 관계는 점점 정직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검사 가능해집니다.
여기서 사랑은 조용히 밀려납니다.
사랑을 원하던 자리에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를 원하는 마음이 들어앉습니다.
그리고 증거는 언제나 조금씩 부족합니다.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시대
Finkel과 동료들의 질식 모형은 이 문제를 더 넓은 시대적 구조에서 설명합니다. 현대인은 한 명의 파트너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요구합니다. 친구, 연인, 동반자, 치료자, 자아실현의 동료, 경제적 파트너, 정서적 피난처, 성장의 거울. 과거의 결혼이 생존과 제도적 안정에 더 많이 기대고 있었다면, 현대의 친밀 관계는 자아실현과 심리적 완성을 요구받습니다.
문제는 요구가 높아졌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 요구를 감당할 자원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시간은 줄어듭니다.
주의력은 분산됩니다.
일은 많아집니다.
감정은 더 자주 피로해집니다.
그런데 파트너에게 요구되는 정서적 기능은 더 많아집니다.
Finkel의 질식 모형이 말하는 핵심은 평균이 아니라 분산입니다. 충분한 시간과 심리적 자원을 투자하는 관계는 이전 세대의 최상위 관계보다 더 높은 만족도를 보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관계에서는 더 높은 기대가 오히려 더 깊은 실망으로 돌아옵니다. 결혼의 질은 평균적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원의 차이에 따라 갈라집니다.
산소가 충분한 방에서는 깊은 호흡이 회복이 됩니다.
산소가 부족한 방에서는 깊은 호흡이 질식이 됩니다.
노력도 그렇습니다. 자원이 충분한 관계에서 노력은 자연스럽게 흡수됩니다. 서로의 여유 안에서 조정되고, 유머와 회복의 시간이 있으며, 실패해도 곧바로 존재 전체가 위협받지 않습니다. 이런 관계에서 노력은 별도의 이름을 갖지 않습니다. 그냥 생활의 일부가 됩니다.
반대로 자원이 부족한 관계에서 노력은 점점 통제된 작업이 됩니다. “오늘은 참아야 한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 “이번에는 상대를 자극하면 안 된다.” 이 조정은 처음에는 성숙처럼 보이지만, 반복되면 정서적 근육을 경직시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유보가 필요합니다. 어떤 관계들은 실제로 노력을 통해 살아납니다. 상처가 회복되고, 언어가 바뀌고, 서로의 리듬을 새로 배웁니다. 그런 관계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오래 관찰해 보면, 그 관계들을 지탱한 것은 노력의 강도가 아니라 노력이 의식되지 않을 정도로 안전했던 구조였습니다. 노력해도 빚이 되지 않는 관계. 실패해도 바로 버림받음으로 해석되지 않는 관계. 다정함이 수행 평가가 되지 않는 관계.
같은 단어, 다른 구조입니다.
가장 깊은 층 — 감정 해석권과 노력의 통치성
여기서 제 연구로 들어가야 합니다. 저는 감정 해석권(affective sovereignty)이라는 개념을 형식화해 왔습니다. 한 사람의 감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최종 권한이 그 사람 자신에게 남아 있어야 한다는 규범적 원칙입니다.[1]
이 개념은 처음에는 감정 AI의 거버넌스 문제로 출발했습니다. 감정 인식 시스템이 사람의 표정, 음성, 행동, 텍스트를 분석해 “불안”, “분노”, “몰입”, “위험”, “신뢰 가능성” 같은 라벨을 부여할 때, 문제는 그 라벨의 정확도만이 아닙니다. 더 깊은 문제는 해석 권한의 이동입니다.
내 감정이 무엇인지 누가 말하는가.
내가 느끼는 것과 시스템이 추론한 것 사이에 충돌이 생기면, 누구의 해석이 우선하는가.
그 해석이 교육, 고용, 치료, 평가, 관계의 의사결정에 연결될 때, 나는 내 감정을 다시 말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이 감정 해석권의 출발점입니다.
해석적 전치(interpretive displacement)는 외부 시스템의 해석이 주체 자신의 감정 추론 회로 안에서 기본 갈등 해결 규칙으로 안정화되는 과정입니다.[2] 원래 이 개념은 사용자가 감정 AI의 라벨을 자기 감정의 일차 참조점으로 받아들이는 상태를 기술하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예컨대 시스템이 “불안”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사용자가 자신의 복잡한 감각을 불안으로 재정렬하는 경우입니다.
물론 인간 관계는 감정 AI와 동일하지 않습니다. 인간 파트너는 자기 내수용 신호를 가지고 있고, 관계 안의 해석은 기계적 라벨처럼 일관되게 반복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노력하는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감정 AI와 “같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유사한 현상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한쪽이 다른 쪽의 표정, 침묵, 어조, 말투, 답장 속도를 끊임없이 해석하고 그 해석에 맞춰 자기 행동을 조정하기 시작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감정에 대한 해석 권한이 상대에게 위임됩니다. 내가 지금 화가 났는지, 서운한지, 괜찮은지를 판단하는 일차 기준이 내 몸의 신호가 아니라 상대의 반응 예측이 됩니다.
이 상태에 들어선 사람은 외형적으로 매우 배려 깊어 보입니다. 상대를 잘 읽고, 먼저 사과하고, 갈등을 키우지 않고, 스스로를 조정합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감정 자율성이 침식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감당할 수 있는 형태로 자기 감정을 번역합니다.
번역은 때로 사랑입니다.
그러나 모든 번역에는 원문의 손실이 있습니다.
최근 분석한 351,734개의 관계 서사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났습니다. 인간은 감정을 말할 때, 느낌과 설명 사이에 의도적 간격을 남깁니다. 완전히 설명되지 않은 자리, 완전히 해석되지 않은 자리. 그 간격은 오류가 아닙니다. 자기 보호의 자유도이며, 표현의 사회적 비용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입니다.
사람은 늘 자기 감정을 그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줄이고, 때로는 돌리고, 때로는 늦추고, 때로는 침묵합니다.
그 간격 안에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보호합니다.
흥미롭게도, RLHF로 정렬된 대형 언어 모델은 그 간격을 거의 보존하지 못했습니다. 모델은 느낌과 서술을 빠르게 일치시킵니다. 더 일관되고, 더 명료하고, 더 해석 가능한 화자가 됩니다. 그 대가로 인간이 보존하는 표현의 자유도는 사라집니다.[3]
이 발견의 함의를 유추적으로 관계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관계는, 두 사람이 동시에 자기 표현을 상대의 해석 가능성에 맞춰 좁히는 관계일 수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더 일관되고, 더 명료하고, 더 해석 가능한 파트너가 됩니다. 갈등은 줄어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말은 정돈됩니다. 감정은 관리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각자의 감정 자율성은 조금씩 사라집니다.
말할 수 없는 감정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안쪽으로 밀립니다.
설명되지 않은 감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돌아옵니다.
너무 오래 번역된 마음은 어느 순간 원문을 잃습니다.
이것이 노력의 가장 깊은 비용입니다.
사랑이 아니라, 해석 권한의 상호 양도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오래 가는가
이 글이 노력을 부정하는 것으로 읽혀서는 안 됩니다. 정확한 진술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율적으로 흐르는 노력과 결핍을 메우려는 노력은 외형이 같아도 다른 일을 합니다.
전자는 관계의 부산물이고, 후자는 관계의 진단입니다. 전자는 관계가 살아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후자는 관계가 불안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반복됩니다.
오래 남는 관계의 공통점은 노력의 양이 적다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채우려는 동작 대신 비워 두는 자리가 있습니다. 상대가 오늘 나에게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진단이나 청구서 없이 받아들이는 작은 자리. 상대가 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그것이 곧 사랑의 부재로 번역되지 않는 자리.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감정 해석권을 보존합니다. 서로의 표현을 좁히지 않습니다. 상대가 느끼는 것을 너무 빨리 해석하지 않고, 자기 감정을 너무 빨리 수정하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랑은 상대가 완전히 해석되지 않는 존재로 남아 있어도, 그 곁에서 무너지지 않는 일에 가깝습니다.
라캉이 말한 결핍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결핍은 인간 조건의 일부입니다. 다만 결핍을 채우려는 노력이 결핍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는 사실만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래 가는 관계는 부족이 없는 관계가 아닙니다. 부족이 매번 위협으로 해석되지 않는 관계입니다. 더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아니라, 노력의 의미가 빚으로 바뀌지 않는 관계입니다.
사랑은 부족을 채우는 일이 아닙니다.
부족을 함께 견디는 일입니다.
견디는 일은 노력보다 조용하고, 훨씬 오래 갑니다.
[1] Kim, R. S. (2026). Formal and computational foundations for implementing affective sovereignty in emotion AI systems. Discover Artificial Intelligence, 6. https://doi.org/10.1007/s44163-026-01000-0
[2] Kim, R. S. (under review). When regulation is no longer self-regulation: Interoceptive authority, interpretive displacement, and the structural conditions of affective dependence. Cognition & Emotion.
[3] 인간 서사의 narrative-affect 좌표 공간에서 RLHF 정렬 LLM의 표현 분포는 약 1.70배 좁은 영역에 응집되었다(95% CI [1.68, 1.70], permutation p < 0.0001). Kim, R. S. (2026). Narrative-affect discrepancy as a regulated degree of freedom in 351,734 relationship narratives. PLOS ONE (in press).
참고문헌
Baumeister, R. F., Bratslavsky, E., Finkenauer, C., & Vohs, K. D. (2001). Bad is stronger than good. Review of General Psychology, 5(4), 323–370.
Deci, E. L., & Ryan, R. M. (2000). The “what” and “why” of goal pursuits: Human needs and the self-determination of behavior. Psychological Inquiry, 11(4), 227–268.
Finkel, E. J., Hui, C. M., Carswell, K. L., & Larson, G. M. (2014). The suffocation of marriage: Climbing Mount Maslow without enough oxygen. Psychological Inquiry, 25(1), 1–41.
Gottman, J. M. (1994). What Predicts Divorce? The Relationship Between Marital Processes and Marital Outcomes. Lawrence Erlbaum Associates.
Knee, C. R., Canevello, A., Bush, A. L., & Cook, A. (2008). Relationship-contingent self-esteem and the ups and downs of romantic relationship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5(3), 608–627.
Lacan, J. (2013). Le Séminaire, Livre VI: Le désir et son interprétation (1958–1959). Paris: Éditions de La Martinière.
McNulty, J. K., & Karney, B. R. (2004). Positive expectations in the early years of marriage: Should couples expect the best or brace for the worst?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6(5), 729–743.
Murray, S. L., Holmes, J. G., Griffin, D. W., Bellavia, G., & Rose, P. (2001). The mismeasure of love: How self-doubt contaminates relationship belief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27(4), 423–436.


I'm not going to paraphrase your text. You've described the situation very well, and I agree with your last http://sentences.Love is not a textbook in the left hand and the one you love in the right http://hand.Education takes place in many areas, in the field of love… Everyone goes there from their experiences… in books, literature…almost…a http://classic.In addition to this, all the coaching tips…various and varied.This is in addition to the "formatted" AI advice on human relationships today.The temptation of "copy-paste" with all the questions and answers is there and wanting to comply with them with the advice in addition seems almost absurd to http://me.In addition to this…the "ideas" from societyMore or less consciously, she would like to "uniformize" a certain type of love relationship with all its ins and outs. Other than that, there's no salvation.What if… the child, the adolescent, had not had this feeling: the fear of abandonment, the fear of not being recognized, desired, loved, etc… the stumbling blocks that go back a long way.And if the child, the adolescent, had learned to recognize in the other person, a human being similar to him and with the same differences, the same questions about life.And if this child, this teenager, had been taught, shown how to get to know each other better, to be able to express his desires and limitations, to tell him that in everything there is an environment where it is possible to join.And if this child, this adolescent, had been given the means to understand relationships while telling him that it would be up to him to interpret his feelings, that the path be made by both, that this adventure, like all others, should be prepared, lived, fulfilled step by step…and that chance sometimes interferes with all this.What if… start loving yourself and then others, this other one would arrive in another "atmosphere"
Ojalá y lo pudieras subir en inglé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