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 맞는 설명 뒤에 숨는 일
임상 언어가 자기 자신에게는 작동하지 않는 자리에 대하여
얼마 전, 제자였던 한 임상가가 제게 긴 메일을 보냈습니다. 7년 차였고, 자신의 분석가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라고 적었습니다. 핵심은 한 줄이었습니다. 호의를 멈추는 법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호의를 멈추면 자기가 사라질 것 같았다고.
그 앞에서 한참 멈췄습니다.
임상 현장에서 매일 타인의 경계를 다루는 사람이, 자기 경계 앞에서는 가장 늦게 도착합니다. 이것은 그 사람만의 일이 아닙니다. 상담사·정신분석가·심리 전공자의 메일에서 가장 자주 보는 문장이 있습니다. “저는 제 역전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사람이 자기 자신과 가장 멀리 있다는 것을 봅니다.
정확한 이름이 만드는 거리
역전이라는 단어는 정확한 도구입니다. Heimann이 1950년에 진단 도구로 재정립한 이래, 분석가가 환자에게 일으키는 무의식적 반응을 이해하는 핵심 어휘로 자리 잡았습니다. 어휘 자체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어휘가 자기 자신을 향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저는 회피형 애착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회피하는 자기 자신은 진단명 뒤로 한 발 물러섭니다. “이건 투사입니다”라고 명명하는 순간, 투사하는 자기는 명명하는 자기와 분리됩니다. 임상 언어는 환자와의 사이에 거리를 만드는 도구입니다. 그 거리가 환자에게 작동할 때는 보호가 됩니다. 그러나 같은 도구가 자기 자신을 향할 때는, 가장 정교한 회피 장치가 됩니다.
이 일은 임상가에게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심리학·정신분석에 익숙해진 일반 독자에게도 같은 구조가 작동합니다. 책을 많이 읽고, 워크숍을 듣고, 상담을 받아 본 사람일수록 자기 자신을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된 그 자리에서, 자기 자신을 만나는 일은 종종 멈춥니다. 설명이 만남을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용어가 정교할수록, 그 용어가 가리키는 사람은 한 발 멀어집니다. 정확성과 회피는 반대말이 아닙니다. 어떤 자리에서는 같은 것입니다.
맞는 조언이 마지막 은신처가 되는 순간
최근 SNS에서 한 글이 빠르게 퍼졌습니다. 호의를 멈추고 적절한 거리를 두라는 권고였고, 몇 개의 숫자가 정확하게 배열되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동의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고 느꼈습니다.
그 글의 문제는 숫자의 진위가 아닙니다. 구조입니다.
호의를 멈추지 못한 자기 자신을 “조건부 사랑을 받은 어린 시절”로 설명하는 순간, 그 자리에 자기는 없습니다. 무너진 관계를 “도파민 시스템의 작동”으로 환원하는 순간, 그 관계 안의 자기는 사라집니다. 신경전달물질과 발달사로 자기를 설명하는 일은 정확합니다. 그러나 정확할수록, 설명되는 사람은 한 발 멀어집니다.
같은 일이 더 부드러운 자리에서도 일어납니다. 친구가 무너진 관계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그건 회피형이라서 그래”, “전형적인 트라이앵귤레이션이야”라고 받아 줍니다. 그 응답은 정확하고 친절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그 순간 친구가 자기 자신을 견디며 천천히 만나는 시간은 짧아집니다. 정확한 위로는 자주, 가장 빠른 회피의 형태로 작동합니다.
이것이 가장 정교한 방어입니다. 맞는 설명 뒤에 숨는 일.
이 글에서 말하는 구조는 제가 최근 Machine Learning with Applications에 발표한 DefMoN 논문에서 다룬 방어적 동기와 서사 왜곡의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Vaillant의 자아 방어 위계를 계산 가능한 구조로 재정리한 작업이었고, 그 작업을 하면서 가장 오래 머문 자리가 지성화였습니다. 지성화는 미성숙한 부정보다 정교합니다. 더 성숙한 형태입니다. 그러나 더 성숙한 방어는 자기 자신을 만나는 일을 더 오래, 더 우아하게 미룹니다. 정확한 이름은 도착이 아니라, 도착을 미루는 가장 세련된 방식이 됩니다.
알고리즘이 가속하는 자리
여기에 한 층이 더해졌습니다.
생성형 AI가 등장한 이후,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는 어느 때보다 빠르고 정교해졌습니다. 사용자가 자신의 상황을 입력하면, 모델은 즉시 애착 유형, 방어 기제, 인지 왜곡, 가능한 진단명을 제시합니다. 응답은 일관되고, 권위적으로 들립니다. 이전이라면 책 한 권, 슈퍼비전 한 시간, 분석 회기 몇 번을 거쳐 도달했을 정도의 명명이, 이제는 30초 안에 손에 쥐어집니다.
이 사용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JMIR Mental Health의 미국 성인 단면 조사는 정신건강 맥락에서 GenAI 챗봇 사용이 이미 일상화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같은 저널의 또 다른 scoping review는 챗봇과 연관된 정신과적 부작용 사례가 언론을 통해 빠르게 축적되고 있음을 보고했습니다. The Lancet Digital Health는 한 발 더 들어갔습니다. 이른바 “AI 정신증”으로 묶이던 사례들을 단일 범주로 보지 말고, 대형언어모델과의 상호작용에서 나타나는 정신증적 현상을 기능적으로 유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이 문헌들이 직접 측정한 것은 부작용의 양태와 사용의 분포입니다. 그 너머의 해석은 제 몫입니다. 모델의 응답이 사용자의 자기 해석을 빠르게 조직할수록, 감정이 자기 자신의 시간 안에서 머무를 여지는 좁아질 수 있습니다. 명명이 빠르면 머무름은 짧아집니다. 그리고 머무름이 없는 자리에서, 만남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상담사들은 이 변화에 특히 민감하게 노출될 수 있습니다. 임상 언어에 가장 익숙하기 때문에, 모델이 제시하는 정확한 명명을 가장 빠르게 흡수합니다. 그리고 매일 환자에게는 자기 자신을 천천히 만나는 시간을 권고합니다. 이 비대칭은 직업적 윤리의 문제이기 전에, 한 사람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분열입니다.
도착이 늦은 자리
다시 그 임상가의 메일로 돌아갑니다.
그녀는 호의를 멈추는 법을 몰라서 무너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학회 발표에서 다룬 적도 있고, 슈퍼비전에서 같은 조언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녀가 무너진 자리는, 그 모든 정확한 지식이 자기 자신에게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인정은 지식의 패배가 아닙니다. 오히려 지식이 닿지 못하는 자리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그 자리는 환자에게는 너무 익숙한 자리입니다. 환자는 매주 그 자리에 와서 앉습니다. 분석가는 그 자리를 가리키는 단어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 자리에 자기가 앉는 일은 가장 자주 미룹니다.
저는 답장을 길게 쓰지 않았습니다. 한 문장만 적었습니다.
“선생님이 호의를 멈추지 못한 이유를 저는 모릅니다.
선생님도 아직 모르실 것 같습니다.”
그녀가 짧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 짧은 답에서, 저는 처음으로 설명을 내려놓은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감정 해석 권리
명명은 도착이 아닙니다. 진단은 만남이 아닙니다. 정확한 설명은 자기 자신을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Discover Artificial Intelligence에서 감정 해석 권리(Affective Sovereignty)로 정리해 온 자리입니다. 자기 감정을 해석할 권한은 가장 정확한 외부 언어가 아니라, 가장 느린 자기 자신의 시간에 속합니다. 모델도, 진단명도, 학회 발표도, 그리고 이 글도 그 권한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가장 정교한 도구일수록, 그 권한을 가장 빠르게 가져갑니다.
그래서 이 글은 답을 주지 않습니다. 답을 주는 글은 같은 구조의 한 사례가 됩니다. 답 대신 한 가지 자리를 남깁니다. 자기 자신에게 적용한 가장 정확한 설명 앞에서, 그 설명이 자기를 데려간 거리가 어디까지인지 한 번만 보는 자리입니다. 그 거리가 가까우면 만남이고, 멀면 도착이 늦은 것입니다.
호의를 멈추는 법은 배울 수 있습니다. 거리를 두는 기술도 익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왜 그 자리에 그렇게 오래 서 있었는지를 만나는 일은, 어떤 연구도 어떤 숫자도 어떤 모델도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호의를 멈춘 자리와, 자기 자신을 만난 자리는 같은 곳에 있지 않습니다.
지금 알고 있는 설명이 너무 정확하다면, 아직 만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참고문헌
Heimann, P. (1950). On counter-transference.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Analysis, 31, 81–84.
Kim, R. S. (2025). DefMoN: A reproducible framework for theory-grounded synthetic data generation in affective AI. Machine Learning with Applications, 100817. https://doi.org/10.1016/j.mlwa.2025.100817
Kim, R. S. (2026). Formal and computational foundations for implementing Affective Sovereignty in emotion AI systems. Discover Artificial Intelligence. https://doi.org/10.1007/s44163-026-01000-0
Flathers, M., et al. (2025). Beyond artificial intelligence psychosis: A functional typology of large language model-associated psychotic phenomena. The Lancet Digital Health. https://doi.org/10.1016/S2589-7500(25)00156-6
Rauschenberg, C., et al. (2026). Help-seeking in the age of AI: Cross-sectional survey of the use and perceptions of AI-based mental health support among US adults. JMIR Mental Health, 13, e88196.
Östsjö, M., et al. (2026). Mass media narratives of psychiatric adverse events associated with generative AI chatbots: Rapid scoping review. JMIR Mental Health, 13, e93040.


Feeling is biology - Interpretation is power. The place where clinical language doesn't work for oneself. That attitude I've been watching. As if the person could not help "pick up all the crushed dogs" the formula is abrupt…and the phrase "he felt like he was disappearing if he did" sums it up perfectly. This attitude is also "formatting". It is unthinkable not to be like this if you are in certain occupations or positions in a family. « She is often the last person to recognize her own on a daily basis." Is it a complacency in suffering? a place in which the individual plays the "role of martyrdom" I don't question the empathy, the compassion of these people…it's like a "too much"… Further "Because the explanation replaces the meeting itself. » « Achieve accurate description » It's almost a lifetime work. It's the sequence of events that does that. You never know how far the resistance, the acquiescence goes. Sometimes it takes very painful ones to move forward, if you accept it. The perception of what he or she is sometimes at the door, at a door that the individual consciously refuses to open for fear of facing up to his or her feelings. As you have often written the name in clinical terms or the appointment, places the person above or beyond what he or she really is. « Benevolence" The kind words that reduce the time of mourning. It is very difficult for those around you to bear this state that is not their own. And the refusal of those words is extremely misconceived. The words in these situations are "hide-hide" to fill gaps that will or will not fill over time. And sometimes it takes a fierce energy not to be caught in this trap of the benevolence of others. « the intelle intellectualization" It's acceptable when it's not about yourself. She's not a denial, she's a way of coping with the pain felt in relation to someone close to her. « AI intervention » In solving an emotional problem, and in order to gain a better understanding of oneself… AI and its interpretation of facts are no longer a utopia. It erases all the steps mentioned above. It is part of the reconstruction of an individual, but as time is erased, it is based on "wind or sand" as you wish, which does not bode well…in my humble opinion of Candide. The meeting with himself you mentioned is not, is no longer possible.
« Accept that there are areas that are inaccessible to knowledge" Learning to be yourself, is a long learning, learning not to be "phacocyticized" by others, may be faster… Also recognizing that nothing is ever really learned, learning to have "internal resources" « The place where goodness has ceased and the place where one has met oneself are not the same place" Knowledge, even if the individual has not yet "experienced" it, is a bit like having a "card" to head. The individual must not allow anyone to interpret his emotions, it is a power, he must defend h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