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 조용한 마음은 어떻게 무너지지 않는가
35만 개 관계 서사가 보여준, 감정과 언어 사이의 새로운 좌표
3년 전, 한 문장에서 막혔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상담실에서, 가족 식탁에서, 늦은 밤의 메시지에서, 가장 흔들리던 사람들이 가장 자주 꺼내던 말. 임상가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이 말이 정돈되어 있을수록 그 사람은 가장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문제는 그 임상감(感)을 좌표로 옮길 도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은 이 현상을 ‘정서조절’이라 불렀습니다. Gross의 과정 모델은 감정이 표현 이전에 어떻게 굴절되는지를 정교하게 그렸습니다. 그러나 굴절의 결과가 언어 표면에 남긴 흔적을 측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정신분석은 더 일찍 도착해 있었습니다. Bucci의 다중코드 이론, 그 이전의 방어 기제 전통은 감정과 언어 사이의 어긋남을 정확히 봤습니다. 그러나 사례 중심의 작업이었습니다. 35만 개가 넘는 실제 서사의 어긋남을 한 평면에 올릴 수는 없었습니다.
신경과학은 감정이 뇌 안에서 구성된다고 말합니다. Barrett의 구성된 감정 이론이 보여준 풍경은 강력하지만, 그 구성이 언어 표면에 어떤 구조적 흔적을 남기는지는 충분히 측정되지 않았습니다.
감성분석은 텍스트의 감정 강도를 1차원 숫자로 환원했습니다. 그 숫자가 서사의 구조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네 학문이 같은 풍경을 다른 언어로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풍경의 좌표는 그려진 적이 없었습니다.
한 평면 위에 두 축을 올린다
이번 연구의 출발점은 단순했습니다.
서사의 구조적 복잡성(N)과 표현된 감정의 강도(A)를 각각 0–10의 축으로 측정하고, 둘 사이의 거리(D = N − A)를 노이즈가 아니라 좌표로 다룹니다.
지금까지 이 거리는 늘 ‘설명되어야 할 잔차’였습니다. 측정 오류이거나, 방어 기제의 부산물이거나, 알고리즘의 한계로 처리됐습니다.
이번 연구는 그 위치를 바꿉니다.
어긋남 자체를 조절된 자유도(regulated degree of freedom)로 다시 정의합니다.
이 한 줄의 재정의가 풍경을 바꿉니다.
영어권 관계 고민 커뮤니티에서 수집한 351,734개의 익명 서사를 이 평면 위에 올렸을 때, 두 축은 거의 독립이었습니다. N과 A의 피어슨 상관은 0.009. 사실상 0에 가깝습니다.
즉 사람들은 감정이 강해진다고 해서 자동으로 더 복잡한 문장을 쓰지 않습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잡한 문장이 강한 감정을 담보하지 않습니다.
두 축은 따로 움직였고, 그 사이의 거리는 사람마다 다른 자리에 놓였습니다.
네 개의 안정된 영역
분포는 무작위가 아니었습니다. 35만 개의 점은 네 개의 식별 가능한 영역에 모였습니다.
결합 표현(Coupled, 91.3%). 서사 복잡성과 감정 강도가 극단적으로 어긋나지 않는 다수 구역. 대부분의 사람은 여기에 머뭅니다.
전략적 과소진술(Strategic Understatement, 5.7%). 강한 감정을 짧고 응축된 문장으로 내보내는 사람들. “괜찮아요”의 한 갈래입니다.
전략적 과진술(Strategic Overstatement, 0.6%). 감정 강도는 낮지만 정교한 서사 구조를 세우는 사람들. 거리를 두고 사건을 재배치합니다.
붕괴(Collapse, 2.3%). 감정 강도는 극단적으로 높지만 서사 구조가 거의 없는 영역. 무너지는 중인 사람의 문장입니다.
이 네 영역은 병리의 분류가 아닙니다. 인간이 사회적 노출 위험과 인지적 비용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방식입니다.
가장 무너지기 직전의 사람이 가장 정돈된 문장을 쓰는 일이 드물지 않은 이유. 그것을 측정 가능한 좌표로 옮긴 결과입니다.
정렬된 모델은 어디에 머무는가
같은 좌표계 위에 RLHF로 정렬된 언어 모델의 출력을 올렸습니다.
모델은 인간보다 약 1.70배 좁은 영역에만 머물렀습니다. 부트스트랩 95% 신뢰구간은 [1.68, 1.70], permutation p < 0.0001이었습니다.
이 결과는 최근 RLHF와 정렬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다양성 축소 문제와 만납니다. Kirk와 동료들은 ICLR 2024에서 RLHF가 SFT보다 출력 다양성을 낮출 수 있음을 보였고, Murthy, Ullman, and Hu의 Harvard Kempner Institute 계열 연구도 정렬이 개념적 다양성을 줄일 수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주요 연구 흐름으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연구들이 주로 본 것은 출력·개념·의미의 다양성이었습니다.
본 연구가 다루는 것은 감정 표현의 자유도, 특히 서사 구조와 감정 강도 사이의 어긋남이 만들어내는 표현 공간입니다.
이 수치는 단순한 표현 차이가 아닙니다. 정렬된 모델이 인간 표현 공간의 일부 영역에 충분히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하학적으로 드러낸 결과입니다.
모델은 붕괴 구역에 거의 들어가지 않습니다. 극단적 과진술도 드뭅니다. 모델이 사람의 말을 ‘이해하는 듯’ 응답하지만, 인간이 실제로 살아가는 표현 영역의 상당 부분은 모델에게 닫혀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모델이 ‘덜 표현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모델이 인간을 위로하거나 분석할 때, 자신이 도달하지 못하는 구역의 인간을 마치 도달한 것처럼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해석이 위로로 들리는 순간, 사용자는 자기 감정의 실제 좌표보다 모델이 도달 가능한 좌표 안에서 자신을 다시 이해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 이동은 아직 충분히 측정되지 않은 채 누적됩니다. Sherry Turkle이 ‘인공 친밀감(artificial intimacy)’이라는 이름으로 오래 묘사해 온 풍경, 사람이 기계와 대화하면서 돌봄과 친밀함에 대한 자신의 능력을 기계가 할 수 있는 것의 크기로 재정의하기 시작하는 그 자리에, 좌표 하나가 추가되는 셈입니다.
정확도의 시대에서 자유도의 시대로
EU AI Act는 2025년 2월부터 일부 금지 관행을 적용하기 시작했고, 직장과 교육 환경의 감정 인식 AI도 그 범위에 포함됩니다. 동시에 Replika에 대한 FTC 제소와 Character.AI 관련 소송은 AI가 정서적 응답자나 전문적 조언자처럼 기능할 때 어떤 위험이 생기는지를 사회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의 규제와 소송 언어는 주로 분류, 기만, 안전, 직접 피해를 다룹니다. 표현 자유도의 축소라는 문제는 아직 충분히 이름 붙여지지 않았습니다.
감정 AI의 다음 질문은 더 이상 “얼마나 정확히 읽는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물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어떤 표현 영역을 인간에게 돌려주는가.
감정 해석의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가의 문제는 오랫동안 추상적 윤리의 영역에 머물러왔습니다. 이번 연구는 그 권한 논의를 측정 가능한 좌표로 끌어내립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어떤 자유도 안에서 표현할 수 있는가. 그 자유도를 시스템이 어떻게 제한하거나 보존하는가.
이것이 다음 10년의 감정 AI 거버넌스가 다뤄야 할 자리입니다.
끝에서 돌아오는 자리
연구는 좌표를 그렸을 뿐입니다. 그 좌표가 임상에서, 교육에서, AI 설계에서 어떻게 쓰일지는 다음 작업의 몫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습니다.
누군가 “괜찮다”고 말할 때, 그 문장이 지나치게 정돈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 가장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중일 수 있습니다.
소리가 작다고 감정이 작은 것은 아닙니다.
가장 복잡한 마음은 가장 조용한 문장 안에 머물러 있고, 알고리즘은 아직 그 안쪽까지 따라 들어가지 못합니다.
참고문헌
Kim, R. S. (2026). Narrative–affect discrepancy as a regulated degree of freedom in 351,734 relationship narratives. PLOS ONE.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348715
Kirk, R., et al. (2024). Understanding the Effects of RLHF on LLM Generalisation and Diversity. ICLR 2024.
Murthy, S., Ullman, T., & Hu, J. (2025). Alignment reduces conceptual diversity of language models.
Turkle, S. Artificial Intimacy: Who We Become When We Talk to Machines 및 관련 논의.
European Commission. AI Act, Article 5(1)(f), prohibited practices applicable from 2 February 2025.
관련 연구 라인
이 논문은 RRI의 감정 해석권(Affective Sovereignty) 연구 프로그램에서, 추상적 권리 개념을 실제 언어 데이터의 측정 좌표로 확장한 작업입니다.
앞선 작업에서는 감정 해석권의 형식적·계산적 기초를 다뤘고, 이번 논문은 그 권한 문제가 실제 인간 서사 안에서 어떻게 측정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어지는 연구는 인간–AI 상호작용에서 공명 증폭(resonant amplification)과 해석 권한 이전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다룹니다.

